주문조회 장바구니 마이페이지 홈 정보수정 로그아웃 주문조회 장바구니 마이페이지 홈 회원가입 로그인
자료게시판 갤러리게시판 묻고답하기 마을소식
구매후기 상품문의 제품보기 향우회소개 마을소식 묻고답하기 오시는길 마을미리보기 인사말

갤러리게시판 9월의 가리점마을
2015-09-04 12:47:20
임재수 <> 조회수 1322
121.183.105.22

여름의 무더위가 남긴 열매, 가을이 이제 한창 익어 가고 있습니다. 9월의 가리점 마을의 풍경을 보면서 어린 시절에 보았던 가을의 추억과  조선 후기의 가사인 [농가월령가]에 그려진 팔월의 농촌을 떠 올려 보았습니다.

백곡의 이삭 패고 여믈들어 고개 숙여 / 서풍에 익는 빛은 황운이 일어 난다

백설 같은 면화 송이 산호 같은 고추 다래 / 처마에 널었으니 가을 볕이 명랑하다

안팎 마당 닦아 놓고 발채 망구 장만하소

면화 따는 대래끼에 수수 이삭 콩가지요/ 나무군 도라오니 머루 다래 산과로다

뒷동산 밤 대추는 아이들 세상이라/ 알밤 모아 말리어라 철 되어 쓰게 하소

9월도 며칠이 지났는데 웬 8월이냐구요? 아침 저녁으로는 선선한 기운이 감돌고 백로 추분의 절기가 들어 있으니 계절상으로 보면  요즈음 풍경이 딱 맞습니다. 그 때는 음력을 사용했고 지금은 양력을 사용하는 까닭입니다.

학창시절의 교과서를 정리하다가 농가월령가를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그 때 느끼지 못한 감회가 새삼스러워 옮겨 보았습니다..

목화(면화)를 우리 마을에서 재배했는지는 기억에 없습니다. 다만 삼(대마)를 재배해서 삼베를 짜는 것을 어린 시절에 봤습니다. 물론 지금은 안합니다.

고추를 처마(밑)에 널어 놓고 말렸다고 하네요. 제가 어린 시절에도 처마 밑에 발을 펴고 고추를 말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조금 양이 많아서 방 한쪽에 돗자리를 걷어서  맨(흙) 바닥에 깔아 놓고 군불을 때서 말렸습니다. 물론 그 방 한쪽에서는 잠을 잤는데 별로 더웠던 기억이 없습니다.

우리 밭 주변에는 다래 나무가 조금 있었습니다. 집에 따 와서 며칠 동안 후숙 시켜 말랑말랑해지면 먹었습니다. 약간 달면서도 시큼한 맛이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철들면서부터 야생 다래를 본 기억이 없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봄에 산나물로 다래순을 따면 그 나무에는 다래가 안 달린다고 합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머루도 많이 따 먹었습니다. 포도보다 알이 작고 단 맛은 적고 신 맛은 많았습니다. 요즘은 야생 머루도 본 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 대신 우리 마을에서도 포도를 많이 생산합니다. 고냉지에서 재배하는 은자골 포도 새콤달폼한 맛이 일품입니다.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들 무렵 마당을 발랐습니다.  장마철에 빗물이 흙을 씻어 가서 돌이나 모래가 많이 들어난 마당에서는 타작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했습니다. 산에서 찰흙(황토)을 파 와서 물에 반죽을 하여 마당 전체를 골고루 바릅니다. 마르는 동안에는 한 쪽으로 돌아 다녔고 어느 정도 물기가 빠진 후에는 바닥이 고르게 되도록 밟아 주고 방망이 비슷한 것으로 두들겨 주었습니다. 요즈음 벼농사는 컴바인으로 베면서 타작까지 끝냅니다. 저 같은 아마추어는 마당에서 참깨 들깨 타작을 가끔 합니다. 그래도 마당에 비닐멍석을 깔아 놓고 합니다. 마당도 대부분 콘크리트 입니다. 그러니 "안팎 마당 닦아 놓고"란 말은 요즘 세대가 이해 못할 것 같습니다.

발채와 망구는 각각 우리 마을에서 "바소가리" 그리고 "걸채"라고 불렀습니다. 전자는 지게 위에 그리고 후자는 소 질매(길마)위에 얹어서 작고 가는 것을 운반하기 좋게 하는 도구였습니다. 지게도 사라지고 운반 수단으로 소를 부리지도 않게 되었으니 모두 저의 기억 속에서도 거의 잊혀지는 단계입니다. ( 발채와    망구 사진으로 보기)

면화 따는 다래끼에 수수이삭과 콩가지를 왜 담아 왔을까요?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짐작을 합니다. 한 가지는 가난(배고픔)때문일 것입니다. 이웃집 00네는 가을 추수할 때까지 못 기다리고 벼를 몇단 정도 집으로 베어 왔습니다. 수수대공을 반으로 접어 그 사이에 벼이삭을 끼워 훑어 냅니다. 그리고 한 바가지 정도의 벼를 장만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했는지(절구에 넣고 찧어서?) 기억에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풋콩이 맛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풋콩을 꺾어다 모닥불에 구워 먹든지 쇠죽 솥에 삶아서 까먹으면 맛이 기막히게 좋았습니다.

나뭇군 지게 위에 머루 다래를 얹어 온다는 말은 쉽게 이해가 안 됩니다. 우리 동네에서는 겨울철에만 나무를 했습니다. 가을 걷이가 완전히 끝나고 그 이듬해 농사철이 시작 되기 전까지 나무를 해서 쌓아두고 1년동안 밥하고 쇠죽 끓이고 군불 땠습니다. 그러니 한창 바쁜 농사철에 나무를 한다는 것은 본적이 없었습니다.

저절로 송이가 벌어 떨어지는 알밤 유난히 주변의 다른 감보다 아주 붉은 홍시는 주인이 아니라도 아무나 주워 먹고 따 먹어도 되는 줄 알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주인이 봐도 "이놈 들아 감나무 가지 부러진다."아니면 "곡식 밟는다"고 야단을 치기는 했지만 그 자체를 탓하지는 않았습니다. 요즘은 법이 다르고 인심이 달라져서 주인이 시비를 걸면 절도죄가 된다고 하지만 옛날 인심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옛날과도 다르고 어린 시절과도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정겨운 가리점 마을의 9월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서 올려 봅니다.

 

한창 수확중인 포도

 

출하를 목전에 둔 은자골 오미자

 

호박 같이 생긴 아니 진짜 호박

 

가을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코스모스

 

울타리 너머에서는 배가 익어 가고

 

도로 가의 키 작은 해바라기 아직 어린 코스모스
 
나팔꽃 코스모스 그리고 철 모르는 장미

 

잘 익은 가지
골목 길의 맨드라미
담장위의 수세미
한창 수확중의 고추

 

 

 

 

 

 

 

 

 

 

 

 

 

댓글 5개